작가 송세인은 웃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는 힘들고 아프고 슬플 때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을 다독였다. 죽자고 생이 덤빌 때마다, 웃자고 책으로 뛰어들었다. ‘웃긴 독서’는 잘 웃는 에세이스트 송세인의 독서 안내장이다. 그가 소개하는 다섯 번째 책은,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 다신책방, 2022년)이다.

인터뷰365 송세인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문화비평가) = 가능한 작은 질문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살며 살고자 했다. 작은 질문과 답으로 꾸려진 세상은 얼마나 안온한가. 질문이 작을수록 생의 굴곡, 질곡, 파고 이런 것과는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도 한 번 최선을 다해 안전하고 따끈따끈한 생의 아랫목으로 한 번 가보자 같은 결심으로 스스로 가능한 작은 질문만을 품고자 했던 것이다.
질문 같은 건 안 하고 살면 되지 않냐고? 글쎄 아무 질문이 없는 생이 존재할까? 제아무리 생각 없어 보이는 존재라도 깊은 속셈이나 무의식의 헤아림은 있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 질문이 없는 영혼이란 없을 것이다.
그간 내게 던져온 작은 문답의 수준이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일생 한 음악인의 음악만 들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베토벤. 만약 평생 하나의 영화만 봐야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명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첨밀밀. 몹시 괴롭더라도 앞으로 내내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결연하게) 김치찌개, 엄마의 혹은 엄마 맛의 김치찌개. 단 부재료는 돼지고기, 참치, 꽁치, 소시지나 햄 등으로 교체해줬으면.’ 같은 시시껄렁한 수준의 질의응답뿐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매우 심사숙고한 결과니 고만고만한 나의 생이여, 부디 이 수준대로 작고 무탈하게, 길게는 모르겠고 얇게는 가주렴 하고 바라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살면서 큰 질문을 만나는 일은 그만큼 원치 않는 일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했다. 하지만 세상은 예기치 않게 흘러가고 의외의 대목에서 생각 밖의 질문을 떠안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체로 그 질문을 자신의 생의 규격, 사이즈를 넘어선다. 이 책, ‘작은 땅의 야수들’이 지금 우리에게 묵직한 직구로, 직격으로 던지는 질문이 그렇다. 책은 주인공 정호의 이야기로 묻는다.
“지금 당신이 지켜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나도 잘 알겠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앞으로도 주인공 정호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 못 한 채 우물쭈물할 나를 말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더욱 또렷이 알 수 있었다. 한동안 나는 이 질문에 포획된 채 지낼 것이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사로잡혀 지내는 동안 마치 흔적기관처럼 사라졌을 나의 야수성이 회복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당신이 지켜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제부터의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과 그 결과값에 따라 소박했던 나의 후반생이 귀결될 수도 있다. 다 읽은 책, ‘작은 땅의 야수들’이 두렵고도 기대되는 지점이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역동성이라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커다란 혼란 앞에 놓여있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대답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나는 나의 생을 통해 무엇을 지켜내고 싶은가.’나아가 ‘당신은 지금 정치, 사회, 역사적으로 무엇을 지켜내고 싶은가.’ 하는 질문은 재빨리 그저 나를 지켜줄 것을 찾는, 나와 같은 보신 위주의 영혼조차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기꺼이 이 질문에 결박되어 답을 찾는데 향후 생의 많은 부분을 지불할 것 같다. 생의 후반, 작은 질문만 끌어안고 살았으면 한 측면에서는 억울한 점도 있으나 따져보면 그 또한 괜찮다. ‘작은 땅의 야수들’에 나오는 이 땅에 먼저 살았던 야수들이 그 답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원치 않게 큰 질문을 안고 살게 된 인생이라도 괜찮다고, 또 거의 모든 이가 그렇게 살다 간다며 그들이 저 먼 과거에서부터 내려온 큰 산맥 같은 위로와 답을 함께 일러준다.
책 속에서 정호는 말한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라고. 또 명보도 말한다. ‘그 모든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다. (중략) 하지만 그는 어쨌든 자신의 역할을 다 했으며, 자신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를 위해 살았다.’ 그뿐 아니다. 에필로그에서 해녀 옥희는 생이라는 질문, 그 자체를 끌어안고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봄의 바닷물결 같은 위로를 띄운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생의 질문을 끌어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치열한 야수로 살았던 1917년 경성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1917년 겨울, 평안도의 눈이 내리는 눈밭에서 호랑이 사냥꾼 남경수는 야마다 일본 장교를 만났고 1918년 옥희는 고작 열 살의 나이로 엄마의 손을 잡고 기방에 기생 견습생으로 팔려갔다. 아버지를 잃은 정호는 경성에 왔다가 옥희에게 반했고 그렇게 각자의 생이 역사와 독립운동에 얽혀버린 그들 모두는 이 작은 땅에서의 생을 커다란 야수처럼 살아내고야 만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이라고 버겁지 않았을까? 자신의 생, 그 앞에 놓인 ‘당신이 생을 걸고 지켜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묵직한 질문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 하는 동정심과 함께 그들이 찾은 그 답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이 우리를 이 커다란 백두대간 같은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나아가 ‘단지 지금으로부터 백 년쯤 전 작은 땅에서 살았던 한국인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인류 전체의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야.”라며 그 시절, 독립운동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생을 찬탄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이는 이 작은 땅은 물론 세계사적 전환기를 마주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용기를 준다. 우리 또한 이 책이 던지는 ‘지금 당신이 지켜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포획되어 사는 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신비로운 야수로의 삶,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하는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에게 다시 작은 질문을 던진다. ‘한 권의 책만을 읽어야 한다면?’ 글쎄, 평생은 아니어도 아마도 근 일 년? 용기가 필요한 한동안은 이 책‘작은 땅의 야수들’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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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인 칼럼니스트
서울生. 에세이스트, 문화비평가. 문화인류학을 학부에서 공부하고 북한학을 전공했다. 라디오 매체들에서 작가로 활동했으며 이후 공보·홍보 기획 및 메시지 비서관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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