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 - '혜화1117' 대표 이현화 편
- '비평연대' 황예린·김수연이 띄우는 헌사
각자도생이 당연해진 시대, 1인 출판사를 창업해 십수 년을 버텨온 30년 업력의 대표 다섯 명이 모여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박희선·박숙희·전은정·최지영·이현화, 유유)을 펴냈습니다. 치열하게 자리를 지켜낸 '선배 언니'들을 향해, 현장의 젊은 출판인·비평가 그룹 '비평연대' 10인이 '동생'의 자리에서 헌사와 답장을 보냅니다. 책을 평가하는 서평을 넘어, 각 대표에게 두 명의 '동생'이 마음을 전하는 특별 기획 '오마주 서평'을 매주 수요일, 총 5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웅덩이를 깊이 파서, ‘후배들’을 개미지옥에 빠뜨리는 법 /황예린(청림출판 마케터·비평연대)
“꿈은 없고요, 그냥 출판이 하고 싶습니다.”
처음 출판계로 입성할 때의 마음은 간결했습니다. 놀듯이 즐겁게 일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이죠. 굳이 미래가 어두운 출판 일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때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이 너무 즐겁다고요. 하지만 그건 서른이 넘기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서른이 넘으면 출판 좀 아는 ‘멋진’ 언니로 진화할 줄 알았건만, 여전히 발장구를 치던 장단이 꼬이고, 헛물도 켜며 출판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 경력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손 안에 쥔 성과가 성에 차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차츰 열기를 잃었습니다. 이대로 출판 외길 인생을 지속해도 괜찮을지 자문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발이 닿지 않는 출판 웅덩이에서 자맥질을 하던 제게, 이 한 문장이 부표가 되어주었습니다.
“내가 만드는 책을 통해 저자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단단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느라 잊고 있던 출판하는 즐거움의 조각을 찾았습니다. 편집자로 시작해 마케터로 일해 온 7년의 시간 동안 가장 즐거웠던 때는 독자들 사이에서 저자와 책이 사랑받는 모습을 목격하는 때였어요. 언니 덕분에 저자와 발맞춰 서로의 세계의 발판을 만들어나가는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하루하루 찍어온 점들이 선이 되고 선들이 만나 면을 이루는 과정을 소상히 들려준 현화 언니에게 감사합니다. 분명 '웅덩이를 깊이 파서, ‘저자들’을 개미지옥에 빠뜨리는 법'을 들려주었지만, 동생인 제게는 '‘후배들’을 출판이란 개미지옥에 빠뜨리는 법'으로 다가왔습니다. 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제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고민할 시간에 웅덩이에 푹 잠겨 보려고 합니다. 깊이깊이 잠수해 바닥에 발이 닿으면 박차고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렇게 헤엄치다 보면, 후배들을 위해 웅덩이를 깊게 파내어 준 현화 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날이 있겠지요.
■ 이 웅덩이는 얼마나 깊어질까?/김수연(출판사 취준생·비평연대)
단단한 사람이고 싶다. 언젠가부터 자주 일기에 나타나던 문장이다. 단단함의 의미는 제각각 다르겠으나 나는 심지가 굵은 것을 의미했다. 좋고 싫은 것, 잘할 수 있는 것,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것,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것,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을 알면 알수록 나라는 사람의 심지가 굵어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웅덩이가 깊어진다.
'웅덩이를 깊이 파서, 저자들을 개미지옥에 빠뜨리는 법'에는 혜화1117 대표 이현화 저자의 직장인 시절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출판편집자로 시작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점철된 2, 30대. 70퍼센트의 물과 불안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좋아 출판계로 뛰어들었지만 언제나 불황, 거기에 생겨난 ‘쉬었음 청년’이라는 단어. 처음 출판사에서 일해 보고 마주한 부족한 나의 모습들. 좋아한다고 해서 업으로 삼는 것은 쉽지 않다는 감각이 자연스레 일었다.
‘나는 왜 이 일을 좋아한다고 여겼을까.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최근 약간의 회의감이 있었기에 이 물음이 낯설지 않았다. 이현화 저자는 하나의 원고를 아끼며 함께 작업한 작가와 어떻게 책으로 내놓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상대와 본인의 의도가 맞는 순간 일의 기쁨을 느꼈다. 그렇게 가까워진 저자와는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취업하기 전 내가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를 적었던 때가 떠올랐다. 작은 메모 패드에 나는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협업 이상의 애정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이 좋다고 적었다.
수많은 출판인을 보며 과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곤 한다. 나는 그들만큼 책에 애정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들만큼 열심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대 초반인 나에게 미래란 너무도 형체가 없다. 그러나 같은 시간을 통과한 저자의 글을 보고 있자면 왜인지 나도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힘이 실린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일할 날도 많이 남았지만, 그날들이 조금은 더 해낼 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을 때쯤 불안과 설렘이 섞인 마음으로 싱숭생숭해졌다. 내 웅덩이는 이미 시작됐다. 이 웅덩이는 얼마나 깊어질까? 누구와 함께 빠질 수 있을까?
[오마주 서평 다시 보기]
▶① 담장을 우아하게 뛰어넘는 법 - '가지' 대표 박희선 편
▶② 갈지자로 정주행하는 법 - '메멘토' 대표 박숙희 편
▶③ 맨땅에 지도를 그리는 법 -'목수책방' 대표 전은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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