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송세인은 웃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는 힘들고 아프고 슬플 때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을 다독였다. 죽자고 생이 덤빌 때마다, 웃자고 책으로 뛰어들었다. ‘웃긴 독서’는 잘 웃는 에세이스트 송세인의 독서 안내장이다. 그가 소개하는 일곱 번째 책은, '한강을 읽는다'(강경희, 김건형, 성현아, 최다영, 허희 저, 애플씨드, 2025년)이다.

인터뷰365 송세인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문화비평가) = 돌이킬 수 없는 숙취의 아침이었다. 아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던 어제 오후로 돌아가리라. 내가 다시 과음한다면 세상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며 구제의 여지가 없다는 같은 가혹한 반성을 하였다. 낮은 포복을 하듯 간신히 방 밖으로 걸어 나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간곡한 청을 넣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소저에게 얼음 커피 한 잔을 주시고 국을 좀 끓여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런 나를 세상 무심하게 바라보던 엄마가 말했다.
“.....얘, 너는 글을 한강 작가처럼 쓰라고 그랬더니, 왜 눈을 한강 작가처럼 뜨고 다니니?!”
웃음이 터져 마시던 물을 뿜으며 부엌 바닥에 쓰러졌다. 숙취는 정말 힘들구나, 아 몹쓸 나는 왜 눈을 한강 작가처럼 떴던가. 바닥에 대자로 누운 지금조차 왜 나의 눈은 떠지지 않는 것인가. 가벼운 원망이 여럿 스쳤으나 이내 질문도 생겼다. 대체 한강 작가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쓰는 것인가. 그는 대체 어떻게 어떤 우주를 유영하며 자신과 세상의 글을 쓸까.
그나저나 또 부모라는 존재는 무엇이길래 당신들의 자녀인 내가 어쩌면 한강 작가처럼 글을 쓸 수 있다, 속절없이 믿으며 무모하게 바라는가. 급기야 매우 편안한 마음이 되어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침 한강 작가와 관련해 기억할만한 장면이 또 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의 밤을 지난 그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던 아빠가 내게 물었다.
“.....참 대단하지. 이런 명예가 없어. 그런데 그이가 누가 온다고 소설을 썼는데.....갠가, 앤가, 누가 온다고 했는데?! 거, 누가 온다고 했지?!”
그러게, 왜 소년은 개와 애의 인상을 더한 것과 같아서 도무지 유모어라고는 없는 아빠로 하여금 본의 아니게 이리 큰 웃음을 선사하게 하는가. 아빠는 우연히 소년을 개 더하기 애의 인상으로 인식했을까. 소년 혹은 개 아니면 애는 왜 우리에게 오는가, 혹은 오지 않는가. 누군가가 온다는 것은 시대와 개인에게 얼마나 큰일인가. 또 다른 질문들을 떠올리며 나는 숙취로 허리를 구부린 채 그 아침, 여전히 부엌 바닥에 누워있었다.
누워서 생각했다. 한강 작가처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어떤 일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들의 인상을 떠올렸다. 어떤 작가의 소설은 벌판을 대차게 내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는데 한강 작가의 글들은 오랜 잠수와 같았다. 여러 온도와 종류의 물을 깊이 천천히 나아가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작품을 통과하느라 도무지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거나 책을 덮을 순간이 다가오면 드디어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르는 쾌감과 함께 오래 숨을 참아낸 자랑스러움마저 느낄 수 있는 독서였다. 느렸지만 차분히 나아가는 읽기의 속도는 묘사된 생의 모든 장면을 지극히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한강 작가처럼 쓰는 것은 가당치 않아도 독자로서 작가의 호흡대로 읽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읽는 행위로 인해 나도 그렇게 작가의 훌륭한, 익명의 동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독자인 나의 숨보다 수십 배는 더 참고 썼을 한강 작가와 그의 문학적 폐활량을 떠올리며 나는 나의 독서 폐활량을 늘려줄 잠수 지도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대단한 잠수 지도사, 한강 작가를 읽기 위해 기꺼이 잠수할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는 일타강사 '한강을 읽는다'를 만났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한강을 읽어야 할 때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섯 개의 한강 작가의 대표작들을 각각의 평론가가 평하고 안내하는 '한강을 읽는다'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훌륭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도서였고 그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헤엄쳐나가는 멋진 계주와도 같았다. 일례로 김건형은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 느껴지는 모종의 불편함이야말로 제대로 읽었다는 증거이니 불편함을 피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왜,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를 되묻고 의미화하라고, 그것이 더 깊이 읽어내는 방법이라 일러준다.
‘종결하지 않는 기억과 약속’이라는 부제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개하는 강경희의 글은 끝끝내 ‘종결하지 않기로 한’ 기억과 약속이라는 부제로 작품을 설명하고 치환해낸다. 또 때로 존재의 불안과 위기는 인간을 질문 앞에 세운다며, 그 질문은 그 해명을 위해 다시 시간과 마주하는 견딤을 요구한다고 그러니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한다. 구체적인 잠수의 기술, 독서의 폐활량을 늘려야 할 필요를 적시하는 것이다.
한강 작가 역시 말했다.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말이다. 대체 얼마나 긴 숨 참기이자 대단한 글쓰기의 폐활량인가.
굳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는 일이 아니어도 우리는 한 번도 물 위로 올라가지 못한 채 숨을 꾹 참고 버텨야 하는 긴 삶의 구간을 만나곤 한다. 개인사도 시대사적 곡절도 그러하다. 그러니 우리는 기꺼이 삶과 독서의 폐활량을 늘리는 연습으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선택할 수 있다. 또 그 긴 문학의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 전 준비운동 혹은 잠수 기술 연마를 위한 선택으로 매우 탁월한 잠수 지도사, '한강을 읽는다'를 만날 수도 있다. 부디 술은 좀 덜 마시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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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인 칼럼니스트
서울生. 에세이스트, 문화비평가. 문화인류학을 학부에서 공부하고 북한학을 전공했다. 라디오 매체들에서 작가로 활동했으며 이후 공보·홍보 기획 및 메시지 비서관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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