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영국 볼트 페스티벌 초연 & 2021년 런던 웨스트엔드 화제극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기술은 삶을 바꾼다. 기술이 삶을 점유하는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지털 중심의 세상이 된 이후, 인간의 삶은 자신만의 생각과 의견, 경험, 관점을 서로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상의 콘텐츠 서비스인 ‘SNS’에 사로잡혀 왔다.
2023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61%가 SNS를 사용하고 있다는 AFP 통신의 집계는 전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기술이 가질 수 있는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 그로 인해 새롭게 조직되고 만들어진 체계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인간 심리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기사 집필로 2019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맥스 피셔는, “소셜 앱은 배고픔이나 탐욕보다 더 강력할 수 있는 충동인 연결 욕구를 장악한다”라는 점에 주목했다.

피셔는 2022년에 출간된 책 '혼란 유발자들'(원제: The Chaos Machine)에서, “손에 꼽게 복잡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얼마나 관계를 잘 맺는가에 대한 “가치 인정”을 통해서만 번성에 필요한 지지와 지원,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진화해왔음을 지적한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공동체의 가치 인정에 대한 압력이 “평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하는 피셔는, 현재의 모든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존재하는 ‘좋아요’ 기능이 게시물 아래 선호도와 공유, 추천 횟수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사회적 인정을 실시간으로 정량화”하고 수치화했음을 피력한다.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사회성 계량기”이자 사회적 인정의 척도가 된 소셜미디어 시스템은 “정체성”과 관련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피셔는 “정체성은 소셜미디어 시스템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자극”이라고 말한다. SNS가 “정체성을 표현하고, 형성하고, 정체성을 통해 세계를 보고 규정하도록”, 보다 많은 시간 머물고 참여하면서 “정체성을 활성화해 생성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눈길을 사로잡아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을 늘릴 목적”으로 설계된 소셜미디어 시스템은 세계 인구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삶을 장악하고, 그들의 사회적 인정 욕구와 정체성을 대변하며,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콘텐츠가 그 자체로 힘을 가짐으로써 현실을 침범하고 혼란으로 몰고 가는 ‘현재’를 만들어냈다.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는, SNS의 사회적 인정 정량화 속성을 이용해 뉴욕 사교계를 뒤흔든 가짜 상속녀 ‘애나 소로킨’(Anna Sorokin)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창작된 연극 '애나엑스(Anna X)'의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자신을 “800억 상속녀”로 소개하며, 고급 호텔에 장기 투숙하고, 명품 의류와 가방, 예술적 취향, 프라이빗 파티 및 행사 참여를 통해 뉴욕 사교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애나는 주요 금융 기관과 은행, 호텔, 사교계 인사들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
수백만 유로의 신탁 기금이 있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문서와 수표를 위조하고 사교계 인맥을 통해 담보 없이 거액의 대출을 받아 예술 재단을 세우려 했던 ‘애나 델비(Anna Delvey)’는 2017년에 체포되었고, 긴 재판을 거쳐 2019년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2018년 '베니티 페어'에 실린 레이첼 윌리엄스의 글과 '뉴욕'에 게재된 제시카 프레슬러의 기사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애나 델비’의 본명은 ‘애나 소로킨’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백만장자 갑부가 아닌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주한 평범한 노동자였다.

애나의 이야기는 2022년 넷플릭스에 의해 오리지널 미니시리스 '안나 만들기'(원제: Inventing Anna)로 제작되었으며, 2024년에는 보석으로 풀려난 애나가 미국 TV 쇼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33에 등장해 전자발찌를 찬 채 춤을 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극 '애나엑스'는 2019년 영국 볼트 페스티벌(VAULT Festival)에서 처음 선을 보였으며, 2021년 스타 프로듀서인 소니아 프리드먼에 의해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어 별 다섯 개의 평점을 받았다.
저널리스트에서 극작가로 변신한 조셉 찰턴(Joseph Charlton)의 극본은 '베니티 페어'의 기사를 읽고 ‘애나 소로킨’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그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기를 쳤는가의 방법보다는 “열망과 재기, 삶의 재창조를 꿈꾸며 미국에 온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는데 집중한 차별점이 있었다.
찰턴은 작가로서 소로킨의 이야기가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전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소셜 미디어와 기술이 가면을 쓰도록 부추기는 속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동안 “세계 상류층 엘리트만이 어울려 노는 곳”에 출입할 기회가 있었고, 그런 기묘한 세상에 대한 경험이 극본 집필에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또한, 찰턴은 당시 “소호하우스 데이팅 앱”이라고 불리며 이슈가 되었던, 엄격한 멤버십 심사를 거쳐 부유층과 유명인만 가입할 수 있었던 ‘데이트 매칭 앱’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정보의 공유화와 지식의 민주화, 다양성과 수평성을 목표로 했던 인터넷이 오히려 일부 사람들을 더욱 배타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모순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음을 피력했다.
연극 '애나엑스'는 “개츠비 혹은 리플리”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찰턴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다른 사람인 척하기 위해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덧붙인다.
실제로 연극 '애나엑스'에는 독일계 러시아인 갑부의 상속녀라고 자신을 소개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애나가 뉴욕 상류층을 어떻게 속였는가의 과정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실리콘 밸리 출신의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인 ‘아리엘’과의 관계 맺음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이는 연극 '애나엑스'는, '가디언'의 평론가 아리파 아크바의 표현처럼, “전형적인 로맨틱 스토리와 상처”를 다룬 듯 느껴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찰턴은 출신이나 배경을 드러낼 수 있는 애나의 ‘성(surname)’을 미지수 ‘X’로 설정함으로써 애나의 신비로움과 수수께끼, 정체성의 혼란의 문제를 주제로 가져온다. 흥미로운 점은 찰턴이 ‘애나’라는 인물 설정에 스스로 작품을 기획하고, 브랜딩하며, 홍보하고, 상품화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현대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배경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극 속 애나는, 허스트가 졸업한 학교인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졸업반이던 22세에 ‘yBA(영국의 젊은 작가들)’을 비평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가야 할지 일종의 ‘개념’을 얻은 것으로 설정된다.
폐쇄된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했지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도발적인 전시로 돌풍을 몰고 왔고, yBA의 수장으로서 영국을 넘어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값비싼 작가 중 한 명이 된 허스트의 설치미술 작품 '천 년'에 대한 이야기는 애나를 깊이 자극한다.

썩어가는 죽은 소의 머리를 먹고 있는 구더기와 전기 살충기에 감전돼 죽어가는 파리들이 담겨 있는 유리 진열장의 설치 미술은, 당시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이자 큰손이었던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관심으로 인해 급속도로 성공의 반열에 올랐다.
“작가가 예술처럼 보이지 않는 예술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 “이것이 예술이 가야 할 방향이고 앞으로 위대한 예술이 될 것”이라고 허스트를 칭송한 사치가 yBA 작가들의 작품을 대규모로 사들일 것이라는 소문은 경제난에 허덕이던 1990년대 영국 미술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미디어의 집중적인 보도를 이용하고, 이미지와 내러티브, 새로운 소재를 활용하며, 동시대 감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자극하는 허스트의 마케팅 방식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애나는 극 속에서 자주 허스트의 말을 인용하는데, 예술가는 “시대에 맞는 도구를 갖고 작업해야 한다”는 그의 지침이, 곧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고, 편집하고, 창조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 앱’들이 가득한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학기말 성적표를 보면서 낙제를 염려하던 애나는 파티장에서 소문의 진실을 궁금해하며 2층 화장실까지 따라온 ‘콘래드’라는 친구로 인해 ‘거짓’으로 ‘관계’를 창조하고, 조종하며, 시대의 도구인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작업을 시작한다.
거품 목욕의 표현이라는 콘셉트 구현을 위해 에어캡 완충제인 ‘뽁뽁이’를 가득 채운 욕조가 있는 화장실에서 콘래드는 ‘러시아 석유 재벌의 상속녀가 재학생 중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냐면서, 그녀가 애나 인지를 묻는다.

애나는 미술에는 재능이 없을지 몰라도, 특정 관심사와 취향, 콘셉트, 인맥을 중심으로 그룹을 나누고, 자신들만이 특별한 존재인 양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 안달하는 세상의 배타적 욕망을, 검은 속내를 이용할 수 있는 재능이 자신에게 내재해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러시아 재벌 상속녀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애나의 애매한 답변은 콘래드가 그녀를 집에 초대하도록 만들고, 예술계에 영향력 있는 부모님의 힘을 빌어 그녀에게 뉴욕 패션 잡지의 인턴십을 소개해 주도록 만든다.
애나는 백화점에서 훔친 명품 드레스와 선글라스로 치장을 하고, 세계 최대의 갤러리로 알려진 곳곳의 명소들을 돌아다니며 셀카를 찍어 SNS에 업로드한다.
아무것도 없이 유명해질 수 있는 공간, 타인의 동경과 열망으로 인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온라인 디지털 플랫폼, 애나가 자신만의 ‘성공신화’를 세우기로 계획한 곳은 바로 다름 아닌 ‘소셜 미디어’가 된다.

2인극인 '애나엑스'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작가인 찰턴이 ‘애나’와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그녀에게 금융 사기를 당한 앱 개발자 ‘아리엘’에게, 관객을 향해 말하는 순간을 상당히 많이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대사를 하며 특정 장면이나 상황을 구현할 때보다 관객을 향해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가 훨씬 많다.
또, 뉴욕 잡지사의 편집장이나 IT계의 투자자, 앱 운영자, 인터뷰 신문기자, 아리엘의 전 여자친구 등 관련된 다른 인물들을 ‘1인 다역’으로 연기하기도 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각자의 이야기가 교차하고, 여러 상황이 짧게 제시되며, 끊임없이 다른 에피소드로 전환되는 연극의 흐름은 관객의 밀도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아리엘은 시종일관 자신을 ‘나(I)’로 표현하는 반면 애나는 자신을 2인칭인 ‘너(You)’로 지칭하는 독특함을 보인다.

애나가 자신을 1인칭인 ‘나’로 표현하게 되는 시점은 아리엘과 있었던 일의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줄 때와 타인들, 가령 트럭 운전사인 자신의 실제 아버지가 그녀에게 내린 평가 등을 전달할 때뿐이다.
목적에 맞춰 필요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진심과 상관없이 목표한 바에 따라 스스로를 움직이는 인물답게, 애나는 ‘나’가 아닌 ‘너’만을 규정한다. 허상인 ‘너’로 채워진 애나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허스트의 말에 따라, 큐레이션으로 창조한 화려한 이미지를 재료로 성공신화를 쓰기 위해 자기 자신을 깔끔하게 비운다.

모든 것은 소셜 미디어에 남겨진 화려한 일상을 담은 사진들과 편집된 이미지들, 거짓으로 채운 ‘너’ 속에 갇혀 있을 뿐, 아리엘이 만든 ‘제네시스’라는 데이트 매칭 앱만큼이나 애나는 허황되고 실체가 없는, 신뢰하기 어려운 조작된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찰턴이 스타트업 창립자로 비즈니스의 정상에 서기를 바라는 ‘아리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가능성’과 평준화되어 있는 인터넷을 떠나 특정한 사람들만이 허용되는 공간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담보로 엄청난 금액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기업의 가치가 매겨지는 ‘벤처 자본주의’의 세상이다.

기술 혁명은 제시된 기술의 효용성을 판별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자본가가 되어, 다음 세대를 움직일 다른 엔지니어를 선택하고 투자하는 벤처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성했다. 실리콘밸리의 넘쳐나는 벤처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이 개발한 ‘앱(app)’의 지분을 얻기 위해 창업자에게 막대한 투자를 했다.
피셔에 의하면, 미국 금융시장 월가는 스타트업의 가치를 훨씬 높게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스타트업이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를 많이 확보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지에 따라 투자가 되어야 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업 가치의 평가 근거가 가정일 뿐”이라는 사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스타트업 회사를 상장시키기만 하면, 초기 투자자들은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찰턴은 아리엘이 “하버드 대학 입학률”보다 멤버십 가입이 어려운 매칭 앱을 구축해 MIT 동문이자 벤처자본가인 ‘제드 그레고리안’에게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투자를 받는 장면을 통해, 벤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제기한다.

수익성에 대한 예측과는 별개로 유명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계급을 나눠준다는 사실에 열광할 사용자들의 ‘욕망’에 매겨지는 기업 가치는 “2억 달러”가 되고, 아리엘은 투자가 결정되자마자 “침실에 그네까지 달린 뉴욕의 아파트”를 계약한다.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근거가 없음에도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거나 움직일 것으로 예측되는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시스템…. 연극 '애나엑스'가 주목하는 것은 예술과 기술, 비즈니스, 심지어 사람 간의 관계까지 ‘허상’ 같은 콘셉트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며, 중독되는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삶에 대한 질문이다.
자신이 만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 의미 있는 관계가 가능한지, 어떤 아이디어가 세상을 뒤바꿀만한 영향력을 갖추었는지를 SNS를 통해 파악하는 세상, 퍼스널 브랜딩과 마케팅, 거짓과 사치, 허영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실재하는 것으로 뒤바꿔 모두를 속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성공’의 기회를 탐색했던 애나와 아리엘의 헛된 욕망과 피상성은 그들 관계의 가벼움으로 이어진다.

애나의 진실을 파고들며 과거를 들추는 아리엘에게 애나가 들려주는 “목에 리본을 감은 여자”의 이야기는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리본으로 간신히 붙잡아 묶어 놓은 것을 풀어버리는 순간 ‘죽음’으로 향하게 되는 존재의 가벼움과 위태로움, 거짓으로 세워진 모래성 같은 사랑, 과거를 감춘 채 현재만 계속되어야 존속될 수 있는 미래 속에 갇힌 관계….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분석가인 에즈라 클라인은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삶만 바꾼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있으며, 소셜미디어의 창시자와 관리자조차도 그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라고 말한다.

찰턴은 자신의 삶을 큐레이션하고, 홍보하며, 매일 정체성을 구성하도록 장려하는 세상을 가져다준 기술이 우리의 어떤 욕망을 자극하고 있는지, 어떤 삶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있는지를 우리 자신이 스스로 점검해 보기를 바란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하는 세상, 뭔가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세상, 성취감이 아닌 ‘만족감’을 보상으로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물도록 고안된 세계가 애나에게 “나를 짓누르는 눈송이 같은 꿈”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눈송이처럼 가볍지만 끝없이 자극하며 꿈꾸게 만드는 참을 수 없는 ‘성공’이라는 환상, 가짜로 만들어진 허상의 무게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것이 있을까? 3월 16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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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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