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국립극단이 50년 만에 무대 올린 차범석 작가의 새마을연극 '활화산'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국립극단이 50년 만에 무대 올린 차범석 작가의 새마을연극 '활화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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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솔 연출, 원작 비틀어 당시 폭력성 획일성 비판
- 노배우 백수련·정진각의 보석처럼 빛난 연기와 경외감
- 170분 대작이지만 볼거리 많게 입체적으로 연출...지루하지 않아
극작가 차범석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국립극단이 1974년 초연 이후 50년 만에 ‘활화산’을 무대에 올렸다. 커튼콜 무대에 오른 주역 배우 정진각과 백수련./사진=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국립극단이 1970년대 새마을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극작가 차범석 선생(1924~2006)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1974년 이해랑 연출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던 ‘활화산’을 윤한솔 연출로 5월 24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 6월 17일까지 공연한다.

50년 만에 다시 올리는 새마을연극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오늘의 관객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궁금했는데, 필자가 첫날 본 ‘활화산’은 압도적인 무대와 다이내믹한 연출로 170분(인터미션 15분 포함)이 길지 않게 느껴졌으나, 클라이맥스는 섬뜩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체통을 잃지 않으려는 이 노인과 부인 심씨 역을 원로 정진각, 백수련 배우가 맡아 연극의 아우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두 원로는 유려한 화술과 격조 있는 연기는 물론 격이 있는 자태로 무대의 존재감 자체가 보석처럼 빛을 발했다. 빛을 발했다는 것은 결코 수사(修辭)가 아니라 의상 분장 조명 등 여러 요소와 더불어 배우 자신이 안정감 있게 캐릭터를 구축한데서 오는 여유와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차범석의 한국 연극사적 위상

1974년 초연 당시 ‘활화산’ 공연 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올해 탄생 100년을 맞는 차범석은 ‘산불’의 작가로 유명하지만 극단 산하를 창단하여 연출가로도 활동했다. 한국 연극사에서 최고의 사실주의 희곡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생전 64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농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MBC TV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첫 회를 집필하기도 해 필자와도 인연이 깊다.

국립극장이 최근 김동원 배우 흉상을 설치한 데 이어 차범석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을 올렸다는 것은 국립으로의 본래 위상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양 고전이나 중국 작품, 또는 실험작에 경도되어 왔다는 지적을 받아온 국립극단이 새마을연극 ‘활화산’을 공연함으로써 우리의 흑역사까지도 포용하는 변화를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연출가 윤한솔과 원작 비틀기

윤한솔 연출은 한양대 사회학과를 나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연출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겸 극단 그린피그 대표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연출가들의 산실인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이고, 2011년 연강예술상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 창작지원으로‘월간 역사시비(是非)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미국 9.11사태에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이주자, 노동자 등 사회적 이슈,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리얼리즘과는 다른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연출 방식을 보여왔다.

필자는 그의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역사 인식과 예술가의 태도에 대한 자기 나름의 주관을 가진, 안정된 기반의 연출가로 알고 있다.

국립극단의 ‘활화산’/사진제공=국립극단

그가 왜 차범석 작가의 많은 작품 중 ‘새마을연극’으로 낙인찍힌 ‘활화산’을 택했을까.

기념적인 성격을 가진 공연은 원작 그대로를 살리는 방법도 있고,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윤 연출은 복고나 당시 프로파간다를 미화하고자 했으면 이 작품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작 희곡을 각색하지 않고 무대 위에 올리되 ‘원작을 비틀어’ 당시의 정권의 도구화된 예술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었는지를 관객들이 보고 느끼게 하려는 것이라고 필자는 보았다. 어쩌면 50년이 지난 현재에서 그의 연출 의도는 필연이고, 관객들(당시를 경험하지 않은)도 당시의 선전 선동에 반감이 발동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필자처럼 당시를 살면서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이분법으로만 새마을운동과 새마을연극을 매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로파간다를 찬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우리가 가난을 벗어났고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휴식시간을 전후로 전반부는 이야기를 크게 뒤틀지 않고 회전무대와 고전적인 세트, 어린이들을 출연시키는 등 역동적 연출기법으로 구시대의 병폐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후반부는 윤 연출이 이 새마을연극(도구화된 예술)을 어떻게 비틀었고,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명징하게 읽힌다.

“예를 들면 맨 마지막 장면에 온 세상이 녹색이 되고, 돼지도 녹색이 되면, 그 세계는 어떻게 보이느냐는 거죠. 거기에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면, 그 세계는 과연 어떤 모양일거냐는 거죠. 다 그렇게 되면 이게 좋은 세상인지? 궁극적으로 이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지. 이런 질문을 던졌으면 해요. 그래서 이 작품을 고르게 됐어요.”(‘활화산’ 연출가 인터뷰 중)

연출가의 생각을 한 부분만 더 옮겨본다.

“마지막 장면은 정숙이 옥돌마을의 지배자가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이 집에 와서 일을 하잖아요. (중략) 그 얘기는 뭐냐면 이 집이 공장이 된거거든요. 제가 재미있던 거는 해방이 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농노들을 만들고 있어요. 정숙이가 또 다른 형태의 지주가 돼버리는거죠.”(‘활화산’ 연출가 인터뷰 중)

차범석 작가가 정권 편에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해도 라스트에 온마을이 상부상조 협동하여 품앗이하는 마을의 변화를 이렇게 해석했다면 그 꼿꼿하신 성격에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하다.

‘활화산’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필자의 무지하고 좁은 소견으로는 새마을연극을 다시 무대에 올려 도구화된 예술을 비판하고 정권의 프로파간다의 횡포가 어느 정도인가를 오늘의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공연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니며 민간 극단에서는 얼마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국립극단이 국립극장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이 연극을 제작했다면 불만을 가질 계층도 있다는 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한솔 연출은 왜 ‘활화산’을 텍스트로 택했을까

박정희 정권이 1970년에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보자”는 구호를 내건 지역사회 개발 운동으로, 특히 근면 자조 협동을 통해 가난을 벗어나자는 기치 아래 농촌에서 활기를 띠었다. 당시 정권은 새마을운동 전국 확산을 위해 영화, 연극 등 예술 장르도 적극 이용했다.

차범석의 ‘활화산’은 1973년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발표된 성공사례를 극화한 작품으로, 1974년 이해랑 연출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같은 새마을 연극은 프로파간다(어떤 이념이나 행위를 널리 알리기 위한 정치용어로 선전, 선동으로 번역된다)로 치부되어 예술성을 인정받기 어려웠고,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올해 차범석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이 새마을연극이 선택된 것은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국립극단은 윤한솔 연출(한예종 연극원 교수)에게 기념작을 의뢰했는데, 64편의 차범석 희곡 중 이 새마을 주제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왜 프로파간다 작품으로 소외됐던 ‘활화산’을 찾아내 무대에 올렸는지, 그리고 국립극단은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올렸는지 솔직히 궁금하다. 왜냐하면 연출의 의도에 따라 1970년대 가난한 시대상과 이를 극복하는 국민 에너지로서의 새마을운동을 복고나 긍정의 의도로 보여줄 수도 있지만, 군사독재 시대의 잔재로 보고 맹렬히 비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그램북에서 윤한솔 연출은 “폭력성과 획일성”을 화두로 제시했고, 공연에서도 연출의 그 같은 의도가 후반부에 집약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본다.

국립극단의 ‘활화산’/사진제공=국립극단

필자는 국립극단이 새마을연극 ‘활화산’을 무대에 올린다고 했을 때 ‘큰 변화’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유신과 맞물려 통제와 검열의 암흑기로 불리는 시대, 선전의 도구로 올려졌던 작품을 국립극단이 택하고 윤한솔 연출이 현재의 감각으로 극화했다는 것은 획기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와 연극의 역사연구가들은 그 시대 목적극은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정치 선전의 도구로 쓰였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유신시대 국책으로 제작된 전쟁영화 5편을 비롯해 대종상을 수상한 새마을영화,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국내 대표 극단이 전국 순회 공연한 새마을연극 등도 현시점에서 재조명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오류와 과(過)는 지적하고 비판하되 그 당시의 시대 배경과 연극사적 위치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활화산’은 공연 형식 면에서 평가할 부분이 적지 않다.

윤한솔 연출은 5막으로 구성된 원작을 그대로 살려 170분(15분 휴식 포함)의 장편을 무대에 올렸다. 50년 전 목적 연극이고 몰락한 양반 가문의 환골탈태 이야기가 재미있지는 않은데도, 관객의 입장에서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지루하지 않다는 것은 연극에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는 캐스팅이고 둘째는 압도되는 상징물로 채운 무대미술, 셋째는 복고풍 사실주의가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 감각에 맞는 웹툰 같은 속도감을 보인 연출력이 반세기 전 연극을 지루하지 않게 다시 보게 했다.

무대에서 빛이 난 원로 백수련·정진각 배우의 존재감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조상대대로 가문의 전통을 이어온 이 노인 역 정진각, 그의 부인 심씨 역 백수련은 무대에서 원숙함과 노련미가 얼마나 큰 역할과 작용을 하는지를 실증해주었다. 두 원로 배우는 무대에 서 있는 존재 자체로 빛이 났고, 옹골진 연기로 가벼워질 수 있는 연극에 고졸(古拙)한 아우라를 조성했다.

전반부에만 나오는 정진각 배우는 국내 연기상을 휩쓸다시피한 연기파 배우로, 이번 공연에서 사라져가는 전통 가장의 역할을 위엄을 갖춘 외모와 설득력 있는 화술로 연기, 강직한 캐릭터를 부드럽게 소화해냈다. 그가 휴식 전 유행가를 흐드러지게 부를 때 필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백수련 배우는 무대에 설 수 있는 여배우 중 가장 어른인데도 한복 곱게 차려입은 우아한 자태가 극 중 캐릭터 연령대로 보일 만큼 젊게 보였다. 지난해 늘푸른연극제 배우로 선정되어 ‘비목’ 연습 도중 낙상, 휠체어를 타고 투혼을 보였던 백수련 배우는 국립극단 연기자양성소 1기로, 차범석 대표의 극단 산하의 단원으로, 이번 국립극단 차범석 기념 무대에 섰다는 것은 전설로 남을 만한 기록이라고 본다.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윤한솔 연출은 변화의 중심에 막내며느리 정숙(강민지)을 세우고 남편 상석 역 구도균, 둘째 아들 상만 역 이상은, 부인 박씨 역 박소연 등을 한 팀으로 만들어, 이들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도록 했는데 개성 있는 배우들의 개인기가 뛰어난데다 연기 호흡이 잘 맞아 극에 활력이 넘쳤다.

또 원작에는 아역 부문이 많지 않은데 실제 공연에선 환(이주형), 석(박은경), 원례(장호인), 길례(서예은) 등이 무대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고, 때로는 아이들 시선으로 장면을 보게 만들기도 했다.

이들 3대 외에 이동영, 이경민, 김효영, 최지연, 조승연, 유재연, 강현우, 홍선우 등이 남녀의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한편 마을운동에 걸맞게 코러스로 참여시켜 집단연기의 재미를 살려냈다. 특히 무대를 꽉 채우는 인해전술로 극의 볼륨감을 높였다.

고가(古家)와 대형 돼지 동상

새마을연극 ‘활화산’을 오늘의 연극으로 각인시킨 요인 중 임일진의 무대미술을 꼽을 만하다. 전반 무대 막이 오르면 고가(古家) 한 채가 객석을 압도하고, 중심을 회전시켜 양면을 객석에 투영해 입체화시켰다. 전반 마지막에 고가를 공중에 띄우고 이노인(정진각)의 초대형 초상화를 내걸어 한 시대의 단절을 보여 준 것도 인상에 남았다.

새마을운동이 주가 되는 후반부 무대에는 대형 돼지상이 관객을 압도했다. 돼지를 상징으로 내세운 이유 중 좋은 의미도 있겠지만 전체주의를 비유한 것임도 쉽게 감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윤한솔은 ‘활화산’을 연출하며 유독 욕설과 싸움 장면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켰는데,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필자 같은 구세대에게는 그 시절 그 정도 욕이나 주먹다짐은 일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연출은 폭력성으로 해석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정숙의 집에 모여 일하는 장면도 품앗이나 자발적 상조가 아니라 또 다른 지주와 농노의 관계라고 해석한 것도 필자 같은 세대에게는 수긍되지 않았다.

특히 필자의 눈에는 마지막 장면을 집단의식으로 몰아간 것에 섬뜩한 충격을 받았다. 이 노인과 심씨까지도 초록색 제복을 입혀 획일적으로 “옳소”를 외치게 하는 장면, 뜬금없이 상석과 정숙이 장시간 입을 맞춘 채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장면(나레이션이 있기는 했지만...)도 필자의 관점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면 곳곳에 올빼미, 뻐꾸기, 개구리, 까마귀 같은 동물 탈을 쓴 배우들을 배치해 이야기에 반응하는 소리를 내는 장면 연출은 시골의 풍경을 연상케 했고, 특히 동물들을 의인화시켜 생각을 표현하게 한 연출은 재밌고 순순해 보였다.

이제 성역 없이 조명해야

우리는 너무 빨리 뛰어왔다. 근대화와 경제발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선악의 이분법이 팽배했고, 과거는 흑역사라며 되돌아보는 것조차 터부시했다.

그런데 국립극단이 차범석 탄생 100주기를 계기로 새마을연극을 윤한솔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관극 후 소감은 상쾌하지가 않았다. 군사정권이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썼던 새마을연극이 50년 후 국립 무대에서 또 다른 목적의 ‘도구’로 쓰여진 것 같아 뒷맛이 영 씁쓸했다.

주최 측이나 연출의 의도와는 별개로 우리 같은 노인세대는 가난했지만 인정이 있었고,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풍류가 있었던 시절이 떠올라 여러 차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지만, 대형 돼지동상이 들어서고 제복 일색의 집단정면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그 이상을 연상케 할 때는 섬뜩했다.

젊은 관객들은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다. 그들이 폭력과 획일화의 시대에서 뭔가 얻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백수련 정진각 두 원로의 레전드 연기에 기립하여 경의를 표하고 싶다. 차범석의 ‘활화산’을 계기로 현대사의 순간들을 성역 없이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작업이 예술 전 분야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청각장애인용 자막은 친절했는데, 배우들의 대사를 자막과 대조해보는 버릇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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