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라스트 씨어터 맨', 페이소스 짙은 이 시대 무명 배우들의 자화상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라스트 씨어터 맨', 페이소스 짙은 이 시대 무명 배우들의 자화상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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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파 배우 박상종·이영석의 듀엣 연기가 빛을 발한 '라스트 씨어터 맨'
- 이 시대 배우들의 현실 리얼하게 그려내 공감대 넓어
극단 은행나무의 연극 '라스트 씨어터 맨' 포스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극단 은행나무가 대학로 드림씨어터에서 공연중(~7월 14일)인 연극 '라스트 씨어터 맨'은 연기파 배우 박상종과 이영석이 2인극처럼 펼치는 '시니어 배우' 이야기로, 연극 현장의 실상을 현실처럼 그려낸 창작극이다.

'낙원상가'로 주목받은 정상미의 희곡을 김경빈이 연출한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곧 폐관될 대학로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60대 배우(박상종)와 터줏대감 경비원(이영석)이 그려내는 연극예술과 극장과 배우 이야기이고 삶의 현실이다.

픽션이지만 연극계 실상을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내 웃다가도 손수건으로 눈가를 연신 닦으며 넋 나간 듯 빠져들어 관람했다.

2인극 같다고 했지만 실은 4인극으로, 프롤로그에 나오는 젊은 배우 두 명(김서아·김용식)이 선배 배우들이 짊어져 온 상황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또한 가슴 아팠다.

필자는 박상종 배우를 김명화 작 연출의 '목련 아래의 디오니서스'에서의 명연에 반해 '찐 팬'이 되었다. 그는 '벚꽃동산', '만선'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였고, 필자가 기획한 늘푸른 연극제 백수련의 '비목'(이재현 작, 심영민 연출)에서 해설자로도 출연해 인연이 깊다.

커튼콜 무대에 오른 주역들. (사진 왼쪽부터) 배우 박상종, 김용식, 김서아, 이영석/사진=정중헌

극단 은행나무 대표인 이영석 배우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알아주는 개성 넘치는 명조연이면서 '고도를 기다리며', '푸르른 날에', '조씨 고아' 등에서도 개성있는 연기를 펼친 중진이다.

이 연기파 배우 두 명이 한 무대에서 펼치는 연극에 대한 애증과 찰떡 케미가 오랜만에 연기 갈증을 풀어준 무대이기도 했다.

폐관을 앞둔 대학로 어느 소극장. 남녀 조연출 두 명이 배우로 무대에 서지 못하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신세 한탄을 하며 퇴장하는데 노배우가 셋업 작업 알바를 하기 위해 들어서면서 경비원과 한판 소동을 벌인다.

나이가 60고개를 넘었는데 늦장가에 처자식 먹여 살리려 막일하러 나온 박상종은 30여 년 전 소극장 개관 때부터 경비로 일해온 이영석과 맞닥뜨리면서 시니어 배우지만 아직도 무명인 현실과 추억이 오버랩된다. 개관 기념 공연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을 했던 이 시니어 배우는 이후 대표작으로 내세울만한 작품 한편 없이 드문드문 무대에 서오며 연극 동네에서 살아왔다.

특히 고인이 된 선배와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에 경비원이 즉흥극으로 해보자고 제안하자 둘은 어느새 고고와 디디로 변신해 멋진 앙상블 연기를 펼친다.

극장 귀신이 다 된 이영석 경비원은 “여기서 공연된 수백 편의 연극은 관객들의 가슴에 오롯이 남아있을 거예요”라고 독백하는데, 필자의 뇌리에는 느닷없이 이제는 폐관된 김민기의 학전이 스쳤다. 최근 중환으로 입원했다는데, 어쩌면 '라스트 씨어터 맨' 김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학로에는 수많은 배우가 있고 매년 젊은이들이 모여들지만 세월 따라 시니어가 된 노배우들도 적지 않다. 30~40년 넘게 무대에 섰지만 변변한 배역도 못 얻고 매체 연기에도 진출 못 한 무명배우들이 부지기수다.

이영석·박상종의 '라스트 씨어터 맨'은 그들을 위로하는 진혼굿 같은 연극이다.

“눈부시게 화려하게 빛나는 별이 아니라, 어느 날 무수하게 쏟아지는 은하수처럼... 우리 시대의 시니어 배우들은 이름 없이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다.

소재도 관객의 가슴에 와닿지만 연기파인 박상종 이영석이 펼쳐내는 2인극의 팽팽한 긴장감, 호흡이 척척 맞는 앙상블 연극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이 땅의 배우와 관객이 많이 보았으면 좋을 작품이다. 색소폰 소리 같은 페이소스를 느낄 것이기에...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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