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영화 '퍼펙트 데이즈', 공중화장실 청소부의 충만한 일상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영화 '퍼펙트 데이즈', 공중화장실 청소부의 충만한 일상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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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장' 빔 벤더스 감독과 '명배우' 야쿠쇼 코지의 만남
-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받은 라스트 4분의 표정 연기 일품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 컷/사진=티캐스트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코모레비'를 아시나요.

영화가 끝났는데 일어서는 관객이 한 명도 없었다. 일어섰던 필자는 뻘쭘히 다시 앉아 긴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아야했다.

끝난 것 같던 자막에 '코모레비'라는 이미지가 떴고 짤막한 해설이 이어졌다.

"나뭇잎 사이로 빛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모습"이라고...

신문사 선배가 페북에 보고 싶다고 쓴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를 수소문 끝에 예술영화관에서 보았다.

빔 벤더스 연출로 2023년 칸 영화제에서 야쿠쇼 코지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 정도만 알았는데 극장에서 본 영화는 중간 넘어까지 시시한듯 했는데 감독과 배우의 명성에 으뜸가게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고, 하품 났던 앞부분들이 경이롭게 리플레이되었다.

"당신은 일상에서 얼마나 만족하며 나날을 사나요?"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으로 필자를 완전 매료시켰던 빔 벤더스 감독(79)은 '쉘 위 댄스' '우나기'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야쿠쇼 코지를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내세워 그의 쳇바퀴 같은 루틴을 서너 차례 반복해 보여주면서 '완벽한 나날'이라고 했다. 뭐 그리 만족할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사진=티캐스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 컷/사진=티캐스트

대도시 온갖 군상들의 배설물을 청소하는 주인공 하라야마는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화분에 물 주고 작업복 차림으로 하늘 한번 바라보며 집을 나선다. 골목 자판기에서 커피 캔 하나 뽑아 소형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로 60~70년대 팝송을 들으며 도심으로 진입, 도쿄타워를 에워싼 중심가 공중화장실을 실제처럼 청소한다. 오물을 걷어내고 변기를 청소하며 반사경을 비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닦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점심에는 녹음이 우거진 신사 벤치에서 토스트 하나로 때우고 푸르른 나뭇잎 너머의 하늘을 구식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게 취미다. 퇴근 후 동네 목욕탕에서 말끔히 씻고 허름한 선술집에서 얼음 탄 소주 한잔 마시고 귀가해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게 일상인 주인공. 독서 수준이 높아 윌리엄 포크너의 단행본이 클로즈업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 컷/사진=티캐스트

젊은 청소부와 애인, 행인들이 잠깐 나올 뿐 전반부에서 주인공 하라야마는 도통 말이 없이 일을 해내면서도 표정은 늘 밝기만 했다.

후반부에 여고생 조카가 잠시 등장해 그의 단조로운 일상을 발랄하게 흔드나 그런 온기도 잠시, 오래 안 보고 지낸 여동생이 가출한 딸을 데리러 오면서 섭섭하게 헤어진다. 왜 이지적인 하라야마가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가 되었는지 설명이 없던 감독은 주인공이 혈육인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보였다.

다시 태양이 뜨고 여명의 햇살을 받으며 출근하는 하라야마.

루틴의 반복으로 지루해지려던 영화는 4분짜리 롱테이크 한방으로 감동 그 이상의 명장면 명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을 들으며 클로즈업된 야쿠쇼 코지의 얼굴... 그 표정에 그려지는 세월의 무늬와 희로애락의 감정선은 단연 이 영화의 압권이며, 왜 이 배우가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지를 수긍케 해준다.

/사진=티캐스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 컷/사진=티캐스트

특히 웃는 듯하던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일 때, 울음을 씹어 넘기는 미묘한 표정 속의 복합 이미지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25시'란 영화 말미에 안소니 퀸이 짓던 그 웃픈 표정보다 더 복잡하고 의미심장한 깊이가 담겨 있었다.

일본인도 아닌 독일의 세계적 거장 빔 벤더스가 이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결국 이야기는 처음의 코모레비로 가야 할 것 같다.

히라야마가 올려다보던 하늘, 나무 사이로 비춰지던 잔영...

조선일보 영화기자의 다음 글에 공감이 가 옮겨본다.

"코모레비... 그렇게 마음에 남고 기억에 잡아두려한 순간들이 모여서 인생이 되고, 삶으로 모인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아마 감독은 그런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진=티캐스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 컷/사진=티캐스트

영화가 거창한 주제나 요란한 형식이 아니라도 이렇게 소박한 일상에서도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장 빔 벤더스와 명배우 야쿠쇼 코지가 보여주는 영화가 '퍼펙트 데이즈'다.

특히 필자에게는 동시대 감독이 그려낸 지나간 시간들, 특히 팝송의 선곡이 가슴에 와닿았다.

대도시 도쿄의 여명을 수평 구도로 보여주면서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애니멀스의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은 영상과 노래가 어우러져 한 폭의 회화작품을 연상케 했다. 영화 중반부 이 노래를 술집 여주인이 일본어로 부르는 장면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라스트에 주제가처럼 흘러나오는 루 리드의 노래 '퍼펙트 데이'가 잔잔한 울림을 주는 카세트테이프의 향수는 필자세대에게는 옛 추억을 소환해주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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