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가 만난 人] “가짜로 얼룩진 조선황실 족보 원상회복하고, 종중 바로 잡아야죠.”
[박현수가 만난 人] “가짜로 얼룩진 조선황실 족보 원상회복하고, 종중 바로 잡아야죠.”
  • 박현수 편집위원
  • 승인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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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이해동 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회장

- 종친회장 두 번째 맡아 20년째 조선 황실 종중 일 혼신
- “전주이씨 92개 종파 중 나처럼 투명하게 운영하는 곳 없을 것”
- 전국에 9000건 넘는 인평대군 위토 땅 찾아내는 성과
- “너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는 협박도 받아
- ‘올바르게 살면 이긴다.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신념으로 살아
- 포천 범시민연대 시민단체 결성하고 2년간 대표 맡아 활동
- “어릴 때부터 불의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
이해동 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회장은 3일 ‘인터뷰365’와 가진 인터뷰에서 “남은 삶은 가짜로 얼룩진 황실 족보를 원상회복하고, 종중을 재정립해 올바르게 바로 잡는 일에 바칠 각오”라고 말했다. 

인터뷰365 박현수 편집위원(인터뷰어) = 우리나라에서 어느 집안이나 종친회의 경우 복마전인 경우가 많다. 문중 재산이 많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20년째, 그것도 조선 황실 종중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해동(81) 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회장이다. 비리로 파산지경에 몰린 종중을 살리고 황실 족보(대궁족보)를 바로잡는 일에 2005년부터 헌신 봉사하고 있다.

이 회장은 3일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창덕궁 인근에 있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사무실에서 ‘인터뷰365’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2022년 4월부터 2년째 다시 11대 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이 두 번째 회장직이다. 2005년부터 7년간이나 제9대 회장을 지냈다.

인평대군은 조선조 제16대 임금인 인조대왕 셋째 아들로 제17대 임금인 효종의 친동생이다. 흥선대원군이 인평대군의 7대손, 고종이 8대손이고, 이 회장은 10대손이다.

고산 윤선도가 인평대군의 스승으로, 인평대군은 시와 글, 그림 모두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인평대군의 시조 ‘바람에 휘였노라’는 작품성이 뛰어나 대입 수능 시험문제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 위치한 인평대군 묘역 전경./사진=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제공

골치 아픈 종친회 회장직을 두 번씩이나 하는 이유를 물었다. “가짜 족보를 이용한 가짜 종친들이 종중을 망가뜨리고 있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종중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못해요. 또 종중 역사에 대해서 나만큼 아는 사람도 없어요.”

가짜 종친들을 걸러내고 종중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너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는 협박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부산에서 유명한 ‘칠성파’라는 조직 두목도 우리 사촌 형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따라 다녔고, 조카들도 ‘어깨’가 있지만 단 한 번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올바르게 살면 이깁니다. 진실은 숨길 수가 없어요. 그런 신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는 가짜 종친들이 ‘이해동이가 다 해 먹었다’고 소문을 내며 소송을 걸었을 때 일을 들려줬다.

“검사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검사 생활 오래 했지만 회장님 같은 분은 처음’이라고요. 그러면서 고소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한 짓은 모두 거짓이다. 사필귀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소송에서 이겼다. “기록을 다 해 놓았기 때문에 승소할 수 있었어요. 종중 일에 쓴 영수증은 하나도 버리지 않았지요.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 누가 아무리 ‘주먹’을 써도 진실은 이기는 법입니다”.

그는 종친회 활동에 들어가는 교통비 정도 외에는 월급도 일체 받지 않고 있다. 투명한 종친회 운영을 위해서다.

“전주이씨 종친회 안에 92개 종파가 있습니다. 아마도 나처럼 종중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데는 없을 겁니다. 종중 일이 아닌 곳에 커피 한잔이라도 종중 돈을 썼다면 고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먹고살만하니까 돈 안 받고 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서울 중림동 서울역 인근 약현성당 앞에 4층 빌딩 건물주다. 가족들은 이곳에 살고 있고, 인평대군 묘역이 있는 포천에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어떤 성 씨든 대한민국 모든 족보들 비치”
“사람들에게 조상 땅 찾는 방법과 노하우 알려주고 싶어”

이해동 회장은 ‘인터뷰365’와 인터뷰에서 “올바르게 살면 이긴다. 진실은 숨길 수가 없다‘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래 언론인 출신이다. 1980년대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사, 내외경제신문사 등을 다니다 퇴사한 후 유명 건설회사 카탈로그를 기획, 편집하는 회사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어 건물을 샀다. 당시 카피라이터, 오퍼레이터, 카메라 메고 인터뷰 하러 다니며 1인 3역을 했다. 이 무렵 ‘은하철도 999’가 한창 유행할 때 완구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족보뿐”이라고 했다.

“남은 삶은 가짜로 얼룩진 황실 족보를 원상회복하고, 종중을 재정립해 올바르게 바로 잡는 일에 바칠 각오입니다. 그리고 조상 땅 찾는 방법과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그런 방법을 잘 아는 전문가를 소개시켜 주는 역할도 할 생각입니다”.

조상 땅을 찾는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했다. “국립중앙도서관 5층에 고문헌과가 있어요. 어떤 성 씨든지 대한민국 모든 족보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열람도, 복사도 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도 검색이 가능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왕실족보를 비롯해 대한민국 족보들을 강탈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지난 1965년 문화재반환협정에 의해 돌려받은 것입니다.” 

전국서 5조 원 규모 인평대군 위토 땅 찾아내

이 회장도 국립중앙도서관을 내 집 드나들 듯이 방문해 전국에 9000건이 넘는 인평대군 위토 땅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위토 땅이 얼마나 많은지 까무러칠 뻔했다”면서 “5조 원도 훨씬 넘는 규모”라고 했다.

종중 땅은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때 많이 사라졌다. 또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황실 가족에 은사금을 지급한 것을 두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몰수하려고 했다. “친일반민족특위 관계자들이 찾아와 서류를 보여주며 종손명의로 된 땅들을 압류하겠다는 것을 투쟁 끝에 일부는 뺏기지 않았다”고 했다. 종중 땅은 일제의 은사금과 관계없이 오로지 인평대군이 받은 위토 땅이라는 것을 자료로 입증해 냈기 때문이다.

이해동 회장(왼쪽서 일곱 번째)이 지난해 9월 23일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서 휘릉(인조대왕 계비 장렬왕후 조씨) 335주기 기신제향을 모시고 제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제공

황실 종중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부회장을 맡은 선친으로부터 종중 땅을 종친회장 등이 은행에 담보로 잡고 1억3000만 원을 대출해 쓰고 갚지 못하는 바람에 경매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막기 위해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회장의 노력으로 경매로 넘어갈 뻔했던 땅을 지키고 그때부터 회장을 맡아 종중을 바로 잡는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지역 상생 방안 추진 타협 이끌어  

그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포천지역 내 3곳에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포천석탄발전소반대 범시민연대’를 결성하고 대표를 맡아 2년간 궐기대회를 진두지휘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발전소가 건설되면 분진을 일으키고 기후 위기 등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게 명분이었다.

결국 석탄발전소의 총 대기 배출 오염물질량을 감축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변 지역 환경관리 등 지역 상생 방안을 추진한다는 조건으로 타협을 이끌어냈다.

이해동 회장이 지난 2014년 포천에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포천석탄발전소반대 범시민연대’를 결성하고 대표를 맡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사진=이해동 회장 제공

시민운동처럼 고생을 사서하는 일을 왜 하는지 물었다. “어릴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응원단장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은 평생 가는 것 같았다.

인터뷰는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 화장실을 가는 일을 제외하고 종중 사업에 관해 열변을 토해낼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거주하고 있는 포천에서 직접 운전해 차를 몰고 왔다. 건강 비결이 궁금했다.

“특별한 게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거죠. 학창시절 태권도를 열심히 해 2단 단증을 땄습니다. 그 이후 별다른 운동은 안 했어요. 모든 게 ‘전투’라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살아왔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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