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365 김두호 칼럼니스트 = 지난 11월 8일이 1970년대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기록을 낸 ‘겨울여자’(김호선 감독)의 남자 주연 김추련(1946∼2011) 배우의 12주기인 것을 박경삼 감독이 카카오톡으로 전해왔다.
박 감독은 영화작가, 영화 프로듀서, CF감독, 스마트폰 영상작가, 대학교수 등 다양한 영상창작 분야 전문가로 활동해오며 김추련과 절친의 우정을 나눈 관계였지만 필자와도 생전의 김추련은 정분이 깊었다.
2011년 11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신문 모서리에 남해안 어느 도시의 알 수 없는 곳에서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는 김추련 배우의 부음 기사가 떠올랐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느닷없이 싸늘한 ‘겨울남자’로 떠나버린 그는 김호선 감독의 1970년대 최고의 빅히트 영화 ‘겨울여자’를 통해 단숨에 톱스타로 떠올라 한동안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매력 있고 때로는 야성미의 숨결을 느끼게 한 개성 있는 연기자였다.

1960년대 말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영화에서 빛을 본 그는 ‘밤의 찬가’ ‘열애’ ‘어느 여대생의 고백’ 등 2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 후 청년기를 지나 영화 출연 활동이 뜸해지면서 세 차례 신곡 앨범을 발표하고 단독 디너쇼를 할 정도의 가수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그의 활동이 조금씩 팬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고독한 방황기로 접어들었고 결국 삶의 의욕을 상실한 우울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진 과정을 주변 영화인들도 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특별히 가깝게 지낸 박경삼 교수가 그의 생전 상황, 죽음의 배경을 뒤늦게나마 밝혀주고 있다.
박 교수가 보내온 12주기 그에 대한 추모 글과 자신이 직접 생전에 찍어 둔, 첨부한 고인의 사진을 함께 공개한다.
낙엽처럼 떠난 배우 김추련 12주기,
70년대 젊음의 아이콘으로 ‘겨울여자’ ‘밤의 찬가’ ‘열애’ 등 당시 젊음의 에너지를 토해냈던
암울한 시대의 주인공을 소화하면서,
스크린에 반사되는 시대의 저항을 대신해 주었던 배우가 김추련이다.
깎아 지른듯한 로만히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둔탁하고 불만을 표출하는 듯한 그의 개성은
당대의 우리 시대, 젊음의 이미지 그것이었다.
개인적인 김추련은 배우가 몸에 맞지 않은 아주 소탈하고 순진무구한 청년이기도 했다.
이후 영화제작, 수입 사업으로 실패 후 좌절의 연속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배우라기 보다 나의 진솔한 친구로서 존재했던 그를 추상해 본다.
- 박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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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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