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브람스와 함께 한 박정자 대배우의 독백극 ‘브람스라 부르자’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브람스와 함께 한 박정자 대배우의 독백극 ‘브람스라 부르자’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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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의 클래식 모놀로그 ‘브람스라 부르자’
- 육성과 손 연기로 인생을 추억케하고 힐링 안겨
박정자의 클래식 모놀로그 ‘브람스라 부르자’ 포스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낙엽 밟히는 만추의 저녁에 서초구 모차르트홀에서 대배우 박정자를 통해 브람스 음악과 더불어 노배우의 연극 인생을 들었다. 생의 번거로움을 잠시 잊고 힐링이 된 멋진 밤이었다.

박정자의 클래식 모놀로그 ‘브람스라 부르자’. 11월 5~8일, 5회뿐인 기회를 박용재 시인의 초대로 얻은 것이다.

평소에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만 원숙의 경지에 이른 박정자 배우를 통해 접하는 브람스 음악은 그만의 아우라가 더해져 음표가 읽혀지듯 한층 풍성했다. 브람스 교향곡은 내 젊은 날 사연이 있는 음악인데, 공연장에서 퀄리티가 높은 오디오로 듣는 3번은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그 웅장함을 뚫고 나온 박정자 배우의 일성(一聲). 젊은 날 들었던 예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연륜이 실린 육중한 프롤로그가 대북을 치듯 굉음을 울리면서 음악을 뚫고 가슴을 울렸다. 워딩이 기억되지 않지만 만장한 관객과 소통하는 그만의 노하우, 그 그로테스크한(리플렛엔 ‘압도적이고 초월적인’) 육성에 사로잡힌 것이다.

박정자 배우가 이날 다소 감상적으로 펼쳐낸 모놀로그 속에 기억 나는 한마디는 “80의 여인 몸속에 20대 젊은 여인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 이야기부터 배우가 어떻게 관객을 장악하는지, 예를 들어 세 번째 줄에 앉은 어느 관객을 노려본다든지, 아무튼 몇 미터 앞의 관객을 감동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브람스 음악의 선곡이 유려했다. 심포니 3번에서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위한 트리오’, 그리고 필자가 좋아하는 ‘겨울나그네’의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부른 ‘오 죽음이여. 너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가 흘러나오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낡아 문양이 지워진 대형 카페트 벽면에 비추는 부드러운 영상이 시신경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졌다. 빗방울, 호수, 숲과 하늘... 한 편의 시 같은 그 흑백 영상은 남편 이지송 감독의 선물 같았다.

음악당에서 박정자 배우의 독백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스레 음악회로 이어졌다. 소프라노 박성희, 바이올리니스트 전진주, 피아니스트 오순영이 세트 같은 무대에서 브람스의 명곡들을 연주했고, 배우 박정자는 그 모습을 그윽하게 지켜보며 휴지(休止)까지도 연기를 했다. 이충걸 작가의 다소 현학적인 대본을 보고 읽는 낭독극이지만 박정자는 특유의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예의 손가락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배우는 연기가 주업이지만 연극을 잠시 쉬는 텀을 인접 예술과 함께 하는 퍼포먼스도 배우의 또 다른 면을 접할 수 있고, 형식면에서도 새로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래서 필자는 박정자 배우의 특별 이벤트가 있을 때 현장에 있기를 원한다.

연극인이어서 모차르트홀을 찾는데 애를 먹었지만, 클래식 모놀로그여서인지 여성 관객이 많았다. 필자를 초대한 박용재 시인은 신문사 시절 같이 일한 후배인데, 박정자의 찐 팬이어서 7일 밤 ‘지인 50인 초청’을 했는데 그 일원에 끼여 오랜만에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들과 더불어 로비에서 박정자 배우와 인사를 나눴는데, 그의 내면에는 분명 청춘의 정열이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12월이 기다려진다. 박정자 배우가 신구 박근형 배우와 함께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면’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기 때문이다. 노배우 3인을 출연시킨 기획도 대단하지만 박정자가 연기하는 럭키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크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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