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다’로 인기 대박 난 그 후, 크리스티나
‘미수다’로 인기 대박 난 그 후, 크리스티나
  • 김두호
  • 승인 201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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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찾아 전부 버리고 온 밀라노 미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이탈리아에서 온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30 Cristina Confalonieri)씨는 KBS-2TV가 2009년 말까지 3년 동안 방영하며 고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연예인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밀라노에 유학 온 한국인 성악가(테너 김현준 / 목원대 음대 겸임교수)를 만나 아내가 되었고 이제는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그는 세련되고 매력 있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여인이다. 방송을 통해 고정출연하면서 미색도 눈길을 받았지만 항상 밝은 표정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외국인 특유의 억양에 다소 어눌하지만 명료한 한국어 표현 솜씨로 세계 각국에서 온 출연자들 중에서 돋보이는 맵시로 많은 화제를 남겼다.

방송 출연 후 무명의 이탈리아인 크리스티나는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우선 거리에 나가면 얼굴을 알아보는 시민들에게 사인세례를 받고 스타 대접을 받는다. 적어도 10개 단체가 넘는 곳에서 그녀를 홍보대사로 위촉했고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외국계 거주자 지원기관인 역삼 글로벌빌리지센터장을 맡겼다.

인터뷰가 끝나고 식사를 함께 한 자리에서 음식점 주인은 자신의 점포를 찾아준데 보답한다며 주문 밖의 음식을 대접해 그녀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인터뷰에는 부군 김현준 교수가 곁에서 아내의 말을 도왔다. 크리스티나가 선택한 한국남자도 동안(童顔)의 꽃미남이었다.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풀네임을 부르기가 쉽지 않다. 이제 부군의 성을 받아 크리스티나 김이 된 건가?

아니다. 내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탈리아는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지 남편의 성으로 바꾸지 않는다. 하하하.


시어머님을 모시고 산다는데 며느리를 어떻게 부르는가?

우리 어머님은 귀여운 강아지 부르듯이 '크리, 크리'하고 이름의 앞머리 두 글자로 나를 부르신다. 한국인 이름이 두자인데 집에서는 그게 내 애칭이고 호칭이다.



지난 2006년 1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인기 TV프로였던 ‘미녀들의 수다(남희석 진행)’에 출연한 외국인 가운데 많은 시청자들이 당신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먼저 그 프로그램에 출연 후 달라진 얘기부터 듣고 싶다.

어딜 가든지 나를 보면 "크리스티나, 예쁘다. 잘 봤다"하고 아는 척하면서 금방 친밀감 있게 인사를 해온다. 택시를 타도 운전기사가 반겨준다. 어떤 때는 관광객 일행이 집단으로 몰려와 사인을 받으려고 법석을 떨어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하면 잘 몰라보더라.(웃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알아 볼만큼 유명해진 것이 즐겁다. 이탈리아 친구들도 나를 부러워한다.


당시 출연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

프로그램 시작 초기에 그 방송을 보신 시어머님(이정자 67)께서 “크리, 너도 나가봐라”라고 농담으로 말씀하신 것이 진담으로 발전해 쉽게 출연기회가 주어졌다.


‘미수다’ 스타가 된 후 많은 단체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홍보대사도 있더라.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

한국의 공중화장실은 세계적으로 손꼽을 만큼 청결하다. 지하철이나 휴게소 등 어딜 가도 깨끗하고 위생관리를 잘한다. 화장실문화가 한층 더 선진국 문화로 앞장설 수 있게 계몽운동을 하는 단체이다. 보람을 느낀다. 홍보대사로 위촉받았던 곳은 제29회 유엔세계평화의날, 서울시인구주택총조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천도자기비엔날레, 경기도와 서울강남구청 등 10여개에 이른다.


지금 주로 하고 있는 일은?

서울시와 강남구청에서 운영하는 역삼글로벌빌리지 센터장을 맡고 있다. 글로벌빌리지센터는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 설립되어 운영된다.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나 다문화 가정의 불편함을 돕는 봉사기관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직원은 몇 명인가?

직원은 나와 세 명이지만 자원봉사자들의 협조로 다양한 사업을 한다. 외국인들을 위한 생활정보 지원에서 상담, 언어나 요리 강좌에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외국인들이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원봉사 외국인들이 복지시설을 위문하고 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상담도 한다.


이제 한국인으로 명사가 되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게 보인다. (곁에 앉은 부군 김현준 씨에게 물었다) 부군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목원대 음대 성악뮤지컬부에서 겸임교수로 출강하면서 테너로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티나보다 내가 세살 많다.


두 분이 만난 때 얘기를 시작하자.

(김현준) 내가 경희대음대대학원을 끝내고 2004년 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국립 리보르노음악원에 유학 갔을 때 만났다. 대학생인 크리스티나가 아르바이트로 나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친 개인교사였다.

(크리스티나) 나의 가족이 살고 있는 우리 집은 밀라노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바지아노시에 있다. 아파트 같은 큰 집이 없는 동네로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5년, 중학 3년을 끝내고 밀라노로 옮겨 고교 5년 과정을 졸업하고 밀라노가톨릭대에서 국제법학을 전공하며 석사과정까지 5년을 다녔다. 나는 대학 5년간 아르바이트로 많은 한국학생들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쳤는데 그 중의 한 학생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사제 관계에서 누가 먼저 프로포즈를?

(김현준) 아마도 내가 먼저였던 것 같다. 첫 인상이 상냥하고 따뜻한데 반했다. 나는 약간의 이탈리아어를 했고 크리스티나는 전혀 한국어를 몰랐다. 그러나 말보다 마음으로 통했다. 일주일에 두 번, 한차례에 2시간씩 교습을 받는 동안 서로 친밀감을 느꼈고 함께 식사를 하고 내가 그녀의 집까지 차를 태워다주면서 우린 친해졌다.

(크리스티나) 5년간 많은 한국학생을 만났지만 이성으로 느끼게 된 사람은 남편이 처음이었다. 공부가 끝나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그의 시선에서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좋았다. 우리 가족과도 알게 됐고 어머니가 초대해서 식사도 자주하며 교제를 시작했다.


(다시 크리스티나에게 물었다) 국제법학을 전공했다면 꿈이 전공학문 분야였는가?

그렇다. 내 꿈은 EU(유럽연합) 기구에 근무하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그 꿈을 이루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5년 벨기에 EU본부 인턴사원으로 채용되어 2006년까지 근무했다. 그런데 남편이 밀라노에서 2006년 8월 서울로 돌아가자 나도 곧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서울로 왔다.

(김형준) 나는 서울로 돌아와 한 달 뒤 인천공항으로 그녀를 마중 나갔다. 내 생애 가장 감정이 북받치고 감동의 눈물을 적신 순간은 공항 출국장을 빠져 나오는 크리스티나와 재회할 때였다. 나를 찾아 자신의 꿈과 직장을 한 숨에 포기하고 달려온 것이다. 손을 잡는 순간 우린 떨어져 살 수 없는 숙명적인 사랑을 느꼈다. 결혼 후 그녀는 늘 나를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문득문득 느낀다. 하루 일을 끝내고 귀가할 때 나에게 줄 선물을 사올 때가 많다. 길을 가다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늘 사랑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 같다.


(다시 크리스티나에게)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묻고 싶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잘사는 나라였다. 도시의 고층빌딩이나 지하철 등 교통편, 식당문화 등 모두가 현대적인데 놀랐다.


이제 한국의 새댁이 되어 한 가정의 주부이면서 사회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말은 통해도 생활문화의 차이점을 극복하는 데는 아직 마음고생이 있을 것도 같다.

가장 힘든 것이 한국인의 체면문화이다. 싫다 좋다가 분명하고 솔직하지 않아서 처신하는데 오해를 많이 받았다. 심지어 우리 시어머님께도 결례를 했다. 한번은 맛있는 음식을 권해드렸는데 “난 괜찮다”고 사양하시기에 그냥 덥석 치웠더니 나중에 매우 서운해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 만나서 식사하자”고 요청해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까닭을 물어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누구나 흔하게 주고받는 빈말 인사라는 거다. 하하하. 어디까지가 빈말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진심인지 아직도 헤맨다.


한국 음식은 무엇을 좋아하나?

삼겹살 맛이 좋다. 아주 고소하다. 이탈리아에서는 돼지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맛있게 먹는다. 또 생선회도 좋아한다. 그래서 바다가 있는 도시를 자주 찾는다.


여행을 다닌 곳 중에 어디가 좋던가?

제주도가 제일 아름다운 곳이다. 서울에 있다가 가장 먼저 구경한 곳이 강릉이다. 남편이 군복무를 한 곳이라며 구경 시켜주었다. 그 후 삼척 부산 울산 완도 경주 거제도 전주 영광 등 많은 곳을 구경했다.


제주도보다 울릉도가 더 아름답다는 외국인도 많다.

아직 그곳은 안 가 봤다. 꼭 가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남편에 대해 묻지를 않았다. 어디가 맘에 드는지.

유머가 통하는 사람이다. 배려심이 많고 잘해준다. 집안일도 도와주고 나를 위해 맛사지도 해준다. 어디서든 무엇이든 날 잘 챙겨주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과 집에서 다시 만나는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


함께 사는 가족은? 아기는?

시어머님 모시고 세 가족이 안양에서 산다. 아기는 아직 낳지 않고 있다. 2, 3년 뒤에 낳기로 했다.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친구는 누구인가?

내가 이탈리아어를 가르쳤던 권재희 씨와 친하게 지낸다. 인터콘티넨탈호텔 요리사로 있다. 자주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정소라 한희경 씨 등 직원들이다.


한국 여성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들 예쁘고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 항상 자기 몸에 신경을 쓰며 멋을 부리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도 화장을 하는 여성을 본다.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에 이르지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부부도 많다. 당신 부부처럼 오랫동안 연애 감정을 가진 부부로 행복하게 살려면 그에 필요한 부부의 자세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린 매일 하루하루에 만족하며 산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남편을 선택했다. 과거도 잊었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사는 노력을 한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 해야 할 일도 쉬지 않고 들어온다. 가톨릭대에서 내가 전공한 국제법 강의도 하고 있다. 서로 다르지만 일은 우리 부부의 생활을 한층 즐겁게 한다. 이번에는 남편이 음악교수로 근무하는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 남자 성악가 60명이 모여 프리모 칸타테를 출범시켜 예술의전당에서 합창 공연을 준비 중이다. 내가 사회를 맡았다. 해외 공연까지 준비하고 있다. 내가 남편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인생은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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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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